당뇨병 치료의 새 시대를 연 인슐린 발견의 역사

인슐린의 발견은 20세기 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획기적인 발견은 당뇨병을 '죽음의 병'에서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바꾸어 놓았다. 본 글에서는 인슐린 발견의 역사적 배경, 발견 과정, 그리고 이후의 발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화학적 관점에서 인슐린의 구조와 작용 메커니즘, 그리고 인슐린 생산기술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할 것이다.

 

인슐린 발견 이전: 당뇨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

 

인슐린이 발견되기 전, 당뇨병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부터 당뇨병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지만, 19세기말까지도 효과적인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1889년 오스카 민코프스키와 요제프 폰 메링은 개의 췌장을 제거하면 당뇨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남을 발견했다. 이는 췌장이 당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20세기 초, 당뇨병 치료의 주된 방법은 극도로 제한된 식이요법이었다. 프레더릭 앨런과 엘리엇 조슬린이 제안한 이 방법은 환자의 수명을 약간 연장시켰지만, 심각한 영양실조를 동반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슐린의 발견은 당뇨병 치료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슐린의 발견: 밴팅과 베스트의 연구

 

1921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젊은 외과의사 프레더릭 밴팅과 의과대학생 찰스 베스트는 인슐린 분리 실험을 시작했다. 그들의 실험 방법은 개의 췌관을 결찰 하여 췌장의 외분비 기능을 퇴화시킨 후, 수 주 후 퇴화된 췌장을 제거하고 랑게르한스 섬을 추출하는 것이었다. 이후 추출물을 정제하여 당뇨병이 유발된 개에게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을 통해 그들은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물질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물질은 처음에 '아일레틴(isletin)'이라고 불렸으나, 후에 '인슐린(insulin)'으로 명명되었다. 1922년 1월 11일, 14세 소년 레너드 톰슨에게 최초로 인슐린이 투여되었다. 초기에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정제 과정을 개선한 후 치료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났다. 이 성공은 의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밴팅과 맥클라우드(연구를 지원한 교수)는 19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인슐린의 화학적 구조와 작용 메커니즘

 

인슐린의 화학적 구조는 1955년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거에 의해 밝혀졌다. 인슐린은 51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폴리펩티드 호르몬으로, A사슬(21개 아미노산)과 B사슬(30개 아미노산)이 두 개의 이황화 결합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슐린의 작용 메커니즘은 인슐린이 세포막의 수용체에 결합하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수용체의 구조 변화로 인한 신호 전달이 일어나고, 포도당 수송체(GLUT4)가 세포막으로 이동하여 세포 내로의 포도당 유입이 증가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슐린은 혈중 포도당 농도를 낮추고, 간과 근육에서의 글리코겐 합성을 촉진하며, 지방 조직에서의 지방산 합성을 증가시킨다.

 

인슐린 생산 기술의 발전

 

초기의 인슐린은 소나 돼지의 췌장에서 추출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대량 생산에 한계가 있었고,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슐린 생산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1978년 데이비드 고들과 아서 리그스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하여 대장균에 인간 인슐린 유전자를 삽입하여 인간 인슐린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1982년 최초의 유전자 재조합 인슐린인 '휴물린(Humulin)'의 상용화로 이어졌다.
1996년부터는 인슐린의 아미노산 서열을 변형시켜 약동학적 특성을 개선한 인슐린 유사체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리스프로 인슐린은 B사슬의 28, 29번 아미노산의 위치를 바꾸어 더 빠른 작용 시작과 짧은 작용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글라르 진, 데테미르 등의 장시간형 인슐린이 개발되었다. 이들은 인슐린 분자를 변형하여 피하 조직에서 서서히 방출되도록 함으로써 하루 한 번 주사로 기저 인슐린을 공급할 수 있게 했다.

 

결론

 

인슐린의 발견은 당뇨병 치료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화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슐린 연구는 단백질 구조 분석, 유전자 재조합 기술, 단백질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을 촉진했다. 오늘날 우리는 인슐린 펌프, 연속혈당측정기 등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더욱 정교한 당뇨병 관리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경구용 인슐린 개발, 스마트 인슐린(혈당에 반응하여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인슐린) 연구, 그리고 췌도 이식이나 줄기세포를 이용한 베타세포 재생 등이 현재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다.
인슐린 발견 10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과거의 성과를 되돌아보며 동시에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인슐린의 역사는 기초 과학 연구가 어떻게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앞으로도 화학, 생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통해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